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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부모가 먼저 배워야 할 것들"

by 그리운달 2025. 8. 4.

국제커플 다문화 가정 어린이 사진 첨부
국제커플 다문화 가정 어린이 사진

다문화 시대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여러 나라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체성은 무엇인가’, ‘공감은 어떻게 가능한가’, ‘가치는 누가 정의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 앞에 부모 자신이 먼저 공감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이에게 열린 사고를 가르치기 전에, 우리가 과연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수 있는가를 묻지 않으면 다문화 육아는 외국어 교육과 문화 체험으로 머무르고 맙니다.

이 글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부모가 아이보다 먼저 배워야 할 세 가지 주제를 정체성, 공감, 가치관이라는 키워드로 독창적이고 입체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정체성은 ‘닫힌 명함’이 아니라 ‘움직이는 구조물’이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정체성 형성을 돕기 위해 국적, 언어, 문화유산등 많은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넌 한국 사람이야”,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단다”, “이건 우리 민족의 전통이야”와 같은 방식이죠.

하지만 다문화 시대에 아이에게 필요한 정체성은 단일 민족, 단일 문화, 단일 언어로 구성된 ‘명함형 정체성’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새롭게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구조물형 정체성’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집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하고, 학교에서는 영어로, 놀이시간에는 친구가 쓰는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다중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여기에 경계감을 갖기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건강한 정체성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정체성은 누군가가 “넌 누구니?”라고 물었을 때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2. 공감은 감정이 아니라 ‘리듬을 맞추는 능력’이다.

다문화가정의 부모로서 아이를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공감’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공감은 단순히 “그랬구나”, “속상했겠다”라고 말하는 감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공감은 타인의 속도, 사고방식, 표현 방식이라는 ‘리듬’을 인식하고, 그 리듬에 맞춰 자신을 조절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식 표현법을 배우며 자란 아버지와 한국식 정서를 내면에 가지고있는 어머니가 아이를 함께 키운다면 서로의 리듬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 또한 그 사이에서 자라며 감정의 리듬이 혼합되기 때문에, “왜 이렇게 말하니?”가 아니라 “이런 리듬에서 자란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이해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입니다.

공감은 감정의 동조가 아니라, 각자의 리듬 차이를 ‘조율이 가능한 간격’으로 인식하는 기술입니다.

3. 가치관은 절대 기준이 아니라 ‘우선순위 설계의 언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 간에 가치관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다문화 부부일 경우, 생활의 우선순위부터 교육의 방향성, 심지어 인사 예절에서조차 충돌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등은 ‘어떤 것이 옳은가’를 두고 벌어집니다. 그러나 가치관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언제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순서에 대한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는 “정직”을 최우선으로, 어떤 부모는 “배려”를 먼저 가르치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직이 더 낫다” 혹은 “배려가 더 중요하다”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는 정직이 먼저, 저 상황에서는 배려가 먼저’라는 구조적으로 우선순위를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도 이러한 사고는 매우 유익합니다. “모든 가치는 유효하지만, 어떤 장면에서 무엇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것이 진짜 가치교육입니다.

부모는 하나의 정답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선순위라는 방법을 함께 디자인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문화 시대의 육아에서 가장 먼저 변해야 할 것은 아이의 정체성이 아니라, 부모의 감각 구조입니다. 정체성을 한 줄로 요약하려고 하지 말고, 공감을 감정이 아닌 리듬으로 인식하고, 가치관을 정답이 아닌 상황별 우선설계로 바꿔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는 한 문화에 소속되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자신을 조율해 나갈수있는 문화적 자기 설계자로 자라나게 됩니다.

오늘도 아이는 성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부모 또한 계속 새롭게 ‘배우고 해석하는 존재’로 남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문화 가정이 가진 가장 깊고 아름다운 가능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