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은 단순한 사랑의 결실을 넘어,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지닌 두 사람이 ‘하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긴 여정입니다. 연애 시절에는 문화 차이나 언어의 차이조차도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결혼 후에는 그것이 일상의 문제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국제커플로 결혼한 실제 부부의 시선을 통해서, 언어 장벽과 소통의 오해, 문화 갈등을 어떻게 마주하고 극복해 나가는지를 진솔하게 풀어봅니다.
아내의 입장: "말은 통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남편은 유럽 출신으로, 영어는 우리 둘 모두에게 제2의 언어입니다. 연애할 땐 영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트하며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고, 여행 계획을 짜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배우는 그 과정은 항상 설레었고 흥미로웠죠. 하지만 결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함께 생활하다 보니 사소한 단어 하나로 민감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냥 싫어’라는 제 말에 남편은 이유 없는 반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에선 그렇게 말해도 상대가 말의 뉘앙스로 대충 짐작을 하는데, 남편은 “왜 싫은지, 이유가 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길 바랐습니다. 또 감정이 격해지게 되면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마음의 표현이 정확하게 안 나올 때도 있어요. 억울하거나 슬플 때는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말이 아니라 눈물로 마음속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그건 다시 ‘비논리적이다’라는 오해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이렇게 말했어요. “넌 싸우는 동안 침묵하거나 회피하잖아. 날 무시하는 거야?” 그 말에 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는 제가 싸움을 회피하고, 외면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는 싸움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는 날은 바로 이야기 하지 않고, 시간이 하루쯤 지난 뒤 서로의 언어로 편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한국어로, 남편은 영어로 썼고, 번역기를 이용해서 서로의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메모, 음성 녹음, 그림, 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했죠.
부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이 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표현 방식과 감정 전달의 ‘언어’를 둘만의 방법으로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입장: "문화 차이보다, 무언의 기대가 더 어려웠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낯설지만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아내는 세련되고 따뜻한 성격이었으며, 그녀의 가족도 나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의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가족 문화는 나에게는 어색하고, 큰 도전이었습니다.
명절이나 기념일에는 시댁에 가서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하고, 식사 시간에는 어른들이 말하는 동안 조용히 앉아서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아내는 "우리만 그런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해”라고 했지만, 나는 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심을 표현할 수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기대’였습니다. 아무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외국인 사위’로서 더 예의있게 행동하고, 더 유연하게 행동하길 바라는 듯한 시선. 그것은 말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행동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그것이 문화적 예의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저 “왜?”라는 질문을 했을 뿐인데, 때론 그것이 무례하고 예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내 나라에선 질문은 존중의 표현인데, 여기선 그것이 예의 없다고 느껴지나 봅니다.
우리는 많이 다퉜습니다. 내가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내 말이 자주 왜곡됐고, 내 감정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말했어요. “당신이 날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다면, 이 문화도 조금은 이해하고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며칠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라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 후로는 내가 먼저 요리도 배우고, 어른들께 한국어로 인사도 연습했어요. 아직도 많이 어색하지만, 아내는 나의 그 작은 노력을 정말 기쁘게 받아줍니다.
내게 가장 큰 변화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는 걸 배웠다는 점입니다.
국제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매일 작지만 깊은 대화를 이어가는 일입니다. 언어는 다를 수 있어도 진심은 반드시 통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 국적도, 문화도, 언어도 결국은 ‘우리만의 언어’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다르다는 점을 문제로 생각하기보다 그것을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자세입니다.